역사의 숨결을 따라서-경주
(경주 보문들과 낭산 둘레길)
2016.12.11.(일)
홀로
코스;분황사주차장/분황사매표소/사거리신호대/도로/황룡사역사문화관/황복사지 삼거리/진평왕릉/설총묘/연화문 당간지주/보문사지갈림길/보문사지/당간지주/수오재/효공왕릉/배반노인정/굴다리/신문왕릉/선덕여왕릉입구/사천왕사지/철교/선덕여왕릉주차장/선덕여왕릉/삼거리/능지탑지/중생사/능지탑지(배반동)
구포출발;8시30분-도착;9시30분
등산;9시50분-하산;13시40분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 빨리 다녀 올 수 있는 곳을 택했다.
경주 보문들과 낭산 둘레 길을 걷는 역사 탐방 길이다.
겨울 날씨 치고는 바람이 없고 온화해서 하이킹하기에 아주 좋다.
들머리 소개가 불명확해서 그 넓은 황룡사지에 들어서서 황룡사 박물관도 보고
황룡사 터만 한 바퀴 돈다고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분황사주차장에서 분황사 매표소 방향이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황룡사 터를 오른쪽에 끼고 어쩌고 하는 바람에 헤맸다.
오늘 탐방로는 첫 들머리와 보문사 지를 지나 수오재를 찾아가는 길만 잘 찾으면
아무런 문제없이 다닐 수 있다.
딱딱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데도 불구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걷는 길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곳곳에 볼거리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경주는 발 딛는 곳 마다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이다.
보문들의 농사를 짓고 있는 곳들도 땅을 깊게 파면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경주의 거의 전 지역이 유물창고인 셈이다.
집사람과는 황복사지 삼거리에서 헤어지고 거기서부터 홀로 걸었다.
신라의 국운을 키웠던 진평왕릉을 둘러보고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의 묘도 둘러봤다.
모두 역사책에서 읽었던 인물들이다.
보문들 넓은 뜰에 커다란 절터가 있다.
신라의 왕릉들과 절들은 모두 넓은 평야지대에 있다.
아마도 왕실사람들이 가마를 타고 선왕의 묘를 찾아보기가 쉽도록 그렇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1박2일이 촬영된 수오재(경주 고택 체험지)는 보문사지를 지나 들이 끝나는 부분 좌측
마을 쪽으로 가면 있다.
수오재 뒤편에는 신라가 쇠락기에 접어들 때의 왕인 효공왕릉이 있다.
국력이 쇠퇴할 시기이니 왕릉도 다른 왕들이 비해 초라하고 한적한 곳에 있다.
배반노인정을 지나 불국사 가는 7번 국도 도로변으로 나오면 신문왕릉이 있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맏아들로 문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얼마 전 경주지방의 지진으로 인해 왕릉 입구의 출입문 지붕 기와가 무너져 내려 지금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신문왕릉을 지나 배반사거리 방향으로 가다가 선덕여왕릉 입구에 도착한다.
그 입구에 있는 사천왕사 지를 지나 선덕여왕릉을 가는 길은 오래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다른 왕들의 묘는 모두 평야지대에 있는데 유독 선덕여왕의 묘는 낮지만 산 속에 있다.
왜 그랬을까?
자손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여왕이니까 은밀한 곳에 모신 걸까?
한 번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선덕여왕과 교감을 나누고 다시 길을 이어서 능지탑지와 중생사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온다.
당초 오전에 헤어졌던 황복사지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길을 못 찾고 선덕여왕릉 입구까지 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다.
능지탑지 입구에서 집사람을 만나 귀가 했다.
분황사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경주는 모든 공영주차장이 무료다
관광지 다운 발상이다
분황사 매표소 입구를 지난다
이 길을 따라가서 신호대가 나오면 길을 건너서 우측으로 길을 따라 간다
여기서 길을 건너 우측으로 간다
건널목이 있는 저 위쪽에 보문단지로 가는 사거리가 있다
모전석탑지를 지난다
이곳에서 저 농로를 따라 간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좌측으로 간다
저 앞에 황복사지 삼거리 갈림길이고
진평왕릉은 좌측 길로 간다
황복사지 삼거리
우측 길이 황복사지 삼층탑으로 가는 길이고
진평왕릉은 직진해서 간다
황복사지 삼층탑이 보인다
농사짓던 논에 문화재가 나온 모양이다
저 앞 숲이 진평왕릉이 있는 곳이다
앞 작은 능선이 있는 산이 낭산이고
그 끝에 선덕여왕릉이 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마을
진평왕릉
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왕이고,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54년을 재임한, 신라 천년 역사의 가장 오래 왕 노릇을 한 이이다.
진흥왕으로부터 시작한 신라의 국운이 바야흐로 꽃 피운 것은 진평왕에게 이르러서이다.
그의 뒤를 이어 선덕과 진덕두 여왕이 왕위에 오르나, 그것은 중간 과정일 뿐, 그가 키운 여러 인재들은 여왕의 시대를 잘 보필했고, 끝내 김춘추라는 불세출의 명군으로 이어져 삼한 통일의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진평왕으로부터 시작했다 해서 지나치지 않다.
진평왕릉 주차장
이 길을 따라 간다
중간쯤에 있는 마을이 수오재가 있는 중마을이다
저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가서 마을회관 뒤로 가면 설총묘가 있다
보문회관
설총묘는 이 회관 뒤쪽에 있다
설총묘
설총(薛聰)(655년 ~ 미상)
원효의 아들이며, 이두(吏讀)를집대성한 이로, ‘화왕계(花王戒)’라는 명문을 써서
우리 문학사의 특이한 경지를 개척했다.
아버지가 불교였다면 아들은 유교에서 거목이었다.
묘의 크기가 임금의 그것 못지 않다.
마을을 나와서 다시 이 도로를 따라 간다
저 앞에서 우측 논쪽으로 내려가면 연화문 당간지주가 나온다
연화문 당간 지주를 보고 다시 도로로 나간다
설총묘가 있는 마을을 바라 본다
다시 이 도로를 따라 가다가
여기서 우측으로 간다
정면에 절터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당간지주가 보인다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규모로 보면 절의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 같다.
보문사지 당간지주
이제 수오재가 있는 저 앞 마을로 간다
설총묘가 있는 마을을 뒤돌아 본다
그 중앙에 보문사지터가 있다
자동차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수오재가 나온다
수오재-경주 고택 체험관이라고 한다
여기서 1박2일 촬영도 했던 모양이다
수오재를 올라오면 우측으로 효공왕릉묘가 있고
배반노인정은 직진해서 가면 된다
배반노인정 가는 길
효공왕릉을 둘러보고 이 길을 따라 갈 예정이다
효공왕릉
국운이 쇠락할 무렵에 돌아가시니 묘터도 그리 좋지 않고 묘도 치장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배반노인정이 보인다
배반노인정을 지나 좌측으로 간다
배반 노인정에서 바라본 신문왕릉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철교 밑을 지난다
날이 봄날처럼 포근해서 개나리가 계절을 착각했나 보다
불국사행 저 앞 7번 국도에 서면 우측으로 간다
우측이 신문왕릉 입구다
신문왕릉 주차장
2016.9.12일 진도 5.8의 강진이 있었던 날 기왓장이 내려앉은 피해를 입었나 보다
그날 부산지방에서도 건물이 크게 흔들렸었다.
내가 느낀 지진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국운이 융성할 때의 임금의 묘는 이렇게 거창하다
그리고 후손들이 관리하는 것도 다르다
신문왕릉에서 바라본 효공왕릉 방향
여기는 개나리가 더 활짝 피었다
경주 남산 방향
효공왕릉 방향의 야산
선덕여왕릉 주차장이 보인다(버스가 서 있는 곳)
사천왕사지가 크다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입구
사천왕사지의 당간지주
사천왕사지를 지난다
선덕여왕릉 주차장
여기서 좌측으로 간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난다
공동묘지인 모양이다
우측에 일반인 묘보다는 큰 묘가 2기 있다
정면에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이 여왕묘는 왜 야산에 숲속에 있을까?
후손이 없어서? 여왕이라서?
길은 왕릉 좌측편으로 이어진다
왕릉 뒤편 숲에 앉아서 여왕과 교감을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왕릉을 나오면 과수원 비슷한 것이 나온다
원래는 저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서 능지탑지와 중생사를 보고
다시 돌아와서 우측으로 가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집사람이 황복사지 삼거리로 온다는 것이 선덕여왕릉 입구까지 오는 바람에
능지탑지와 중생사를 보고 마을 입구에서 만나 귀가했다
능지탑지-문무대왕의 시신 화장터로 추정된다고 한다
참고지도-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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