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
광한루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소형\1500)
주차를 한 후에 광한루 담장을 따라 갑니다
능소화-꽃잎이 커다란 능소화가 광한루 담장에 피었읍니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어요.
소화가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습니까?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 까지
기거 하게 된 소화는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답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어 지지 않고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한
애닮픈 유언을 남긴채 그렇게 사라져 갔습니다.
이듬해 여름,
'소화'가 살았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났는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입니다.
입장권을 삽니다
어른은\2000이네요
정문을 지납니다
잘 단장된 잔디밭이 반깁니다
아직까지는 옛날 기억이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안내도를 한번 봅니다
잔디밭 위에 꽃마차가 있읍니다
달려가 꽃구경을 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 와보는 공주는 즐거워 합니다
광한루 앞에 조그만 다리를 건너 대숲을 지납니다
관광객들이 광한루 앞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2000),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하는 군요
집사람이 우리도 한번 빌려 입고 찍자고 난리입니다.
겨우 간신히 말렸읍니다.
춘향사당을 둘러봅니다
춘향이 실존 인물이냐고요?
춘향이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아래 글은 봉화군 홈페이지 http://bonghwa.go.kr/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도 있으니 궁금하시면 홈봉화군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되겠네요.
----------------------------------------------------------
봉화(奉化)의 실존인물 '성이성(成以性)'주장의 배경
▲ 주 장 자 :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 문과대학 인문학부, 춘향전 계통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 받음. 연구관심 분야 : 한국고전문학 및 춘향예술사 분야
▲ '설'교수는 지난 '99. 11. 3.과 11. 23. 일본 및 국내에서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통해 공식 발표.
▲ "성춘향과 이도령은 실존인물이었다" 주장의 내용 요지
성춘향과 이몽룡. <춘향전>의 두 주인공은 여지껏 이런 이름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도령(李道令)으로 알려져 왔으나 ‘성도령(成道令)’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춘향의 성은 본디 무었이었는지 정확치 않다).
'이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조선조 광해군 ·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
한국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의 탄생비밀이 최근 한 국문학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밝혀졌다.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춘향전 비교연구>등 굵직굵직한 저서를 내놓으며 지난 30년 동안<춘향전> 연구에 괄목할 성과를 일궈온 설성경 교수에 의해 근 3백년간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이른바 '춘향전 신화'의 본디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설 교수는 오랬동안 <춘향전>이야기 '역사적 실체'가 숨어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이를 밝히는데 몰두해 왔다. 그는 최근 자신의 '가정'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자료를 손에 넣었다. 성이성 본인의 일기 따위를 후손이 편집해낸<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 섭(成涉 : 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가 그것이다. <춘향전>의 두 주인공 성춘향과 이도령의 실존 인물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는 물론 민간에서 구전된 설화와도 면밀히 대조·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길에 길을 나서서 십리가 채 안되어 남원땅이었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눈을 부릅뜨고 (원천부내로)들어갔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女眞)과 기생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능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원문 생략, 고딕체 강조는 편집자)
이 구절은 이도령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성이성 본인의 기록 '호남암행록'(<계서선생일고>에 실려 있음)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설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늙은 기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밤잠을 설쳐가며 소년 시절을 회상했다'는 성이성의 진술. 설 교수는 "비록 성이성이 직접 옛 연인(또는 춘향)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앞 뒤 정황으로 보아 틀림없이 옛 연인을 그리워한 대목이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한다.
설 교수에 따르면, 옛 연인(또는 춘향)은 기생이었음이 분명하고, 그 중에서도 관기(官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옛연인(또는 춘향)이 성이성과 이별한 뒤 연정을 지키려다가 사적인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관기(官妓) 사회의 규제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실제인물 성이성의 행적과 <춘향전>주인공 이도령과의 밀접한 관계는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그대로 유입된 <필원산어>의 한 대목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된다. 성 섭은 성이성의 4대손이며, 홍문관 교리·암행어사를 지낸 성기인(成起寅)의 아들이다. 성 섭은 <필원산어>에서 자신의 고조(성이성)가 남원 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사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우리 고조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암행하여 한곳에 이르니 호남 열두 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모양으로 음식을 청하니 ... 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 곧 한 장의 종이를 청하여 시를 써주었다. ‘독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소반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진다.’쓰기를 마치고 내놓으니. 여러 관리들이 돌려가며 보고는 의아해 할 즈음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외치며 달려들어 갔다. 여러 관리들은 일시에 모두 흩어졌다. 당일에 파출시킨 자가 여섯이나 되었다.'
<필원산어>에 나오는 이 대목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장면과 다름이 없다. 특히 성이성이 여러 관리에게 보여준 한시(漢詩) 구절은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내보인 한시 구절과 정확히 일치한다. 암행어사 출두 장면은 그것이 판소리 계열의 <춘향가>든, 소설계열의 <춘향전>이든 예외없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한 대목 '술독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라는 시구는 성이성이 지은 한시내용 그대로인 것이다.(원문은 '金樽美酒千人血/ 玉盤嘉肴萬姓膏/燭淚落時民淚落/歌聲高處怨聲高'로 되어 있음).
이쯤 되면 기왕의 <춘향전>은 형성요소의 절반이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춘향전>의 실제 모델을 밝히려는 노력이 과거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춘향전>발생(기원)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이성은 일찌감치 60년대에 '1대 춘향전 연구가' 이자 설성경 교수의 스승이던 나손 김동욱 교수(작고)에 의해, 조선조 말 동시대인으로서 저마다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노진·박문수·김우항 등과 함께 '실제 모델'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김교수는 성이성 관련 설화에 '춘향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설교수는 '미완의 연구'로 끝난 이 부분에 새로 발굴한 사료와 남원일대에 흩어져 있는 각종 고사와 춘향설화를 있대어 새로운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설교수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춘향전>발생 시나리오를 다시 짜맞추고 있다. <춘향전>발생 경로와 관련하여 기존 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하나는 <춘향전>이 무속(특히 무가)에서 발생해 진화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판소리를 통해 발생·진화 했다는 것이다. 설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즉, <춘향전>은 성이성 등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절반으로 하고 각종 고사·설화 등 '허구'를 절반으로 하여 한 '유능한' 작가의 창작에 의해 최초의 텍스트가 성립된 이후, 각양·각층의 민중 참여(첨삭)를 통해 오늘날의 <춘향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춘향사당 앞에 핀 원추리곷
춘향 영정-옛 여인의 영정은 다 비슷합니다
춘향 사당의 단청-거북이와 토끼
춘향 사당을 나오면 그 옆에 비석들이 즐비합니다
한복을 빌려주고 있다(\2000)
출입이 금지된 광한루
오작교
오작교 아래의 잉어들
잉어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렇게 큰 잉어를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잉어의 수명이 7-80년 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떤 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
노란색의 잉어를 보시라
사람 얼굴 모양이다
오른쪽의 요놈도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잉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잉어들이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 몰려 다닌다
밥을 주는데 길들여져서 그런 모양이다
이 나뭇가지는 코끼리 코 모양을 하고 있읍니다
신기하다고 한번씩 만져봅니다
춘향관은 소설 속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해 놨읍니다
이제 관람을 다 마치고 서문을 향해 나갑니다
서문 담장 옆에는 상가들이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있네요
이제 저 앞 주차장까지 걸어갑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부 생가 동네-인월 (0) | 2008.07.01 |
---|---|
만인의총-남원 (0) | 2008.06.30 |
여행 (0) | 2008.06.30 |
정승마을의 펜션단지 (0) | 2008.06.23 |
신불재 (0) | 2008.06.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