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처가집 친척 잔치로 인해서
등산을 한 주 쉬고
대구에 갔다왔다.
돌아오는 길에 막내 처제를 바래다 주러 가는 길에
초읍 어린이공원 아래에 있는 삼광사에 들렀다.
천태종의 유명한 사찰인데
부산에 살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절이다.
집사람이 시간이 있으니 한번 둘러보고 가잔다.
역시 생각했던 만큼이나 절의 위세가 느껴진다.
삼광사는 천태종으로서 단양의 구인사가 총본산이다.
天台宗이란?
지금부터 약 1400년 전인 594년 수나라 개황 14년
중국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禪)과 교(敎)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宗派)입니다.
지자대사가 계시던 산이 천태산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천태종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 부터 비롯되었으며,
정식으로 천태종이 개립된 것은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 스님에 의하여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조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년 동안 역사 속으로 은몰되었던 천태종(天台宗)은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天台宗의 歷史
우리나라의 천태종은 고려시대, 국청사(國淸寺)라는 절에서 의천 대각국사(義天 大覺國師)에 의하여 처음 종단으로 개창되었습니다.
의천스님은 고려 문종왕(文宗王)과 이씨 왕후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신 한 나라의 왕자님이셨습니다.
의천스님께서는 11세에 아버지이신 문종왕의 권유로 당시의 왕사(王師)였던 경덕(景德)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의천 스님도 왕자의 신분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구도(求道)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출가 후, 스님께서 많은 학인(學人)스님을 가르치시다가 31세가 되시던 해, 중국의 송나라로 법을 구하는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시게 됩니다.
그리고 14개월 동안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당시 유명했던 선지식과 법을 논하고 천태법화사상을 공부하시어 과거 천태지자대사의 큰 뜻을 함께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천태대사께서 수행하셨던 천태산에 올라 고려에 천태의 종풍을 크게 일으키실 것을 발원하시고 구법활동을 마치시고 다시 고려로 돌아오십니다.
귀국과 함께 의천스님께서는 중국의 송나라, 요나라, 그리고 일본 등으로부터 47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하시고
이것을 기초로 고려 속장경의 근간이 되는‘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편집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천태대사께서 그러하셨듯이 힘든 세파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올바른 의지처를 마련해 주시고자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산에서의 발원(發願)에 따라 고려 천태종을 처음 개창하시게 됩니다.
당시 고려불교는 교리에만 치중하는 교종(敎宗)과 교리를 무시하고 참선만을 고집하는 선종(禪宗)이 서로 대립하여 자신의 우월함만을 내세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의천 스님께서 고려 천태종을 개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고려 천태종의 개창은 서로 대립했던 교종과 선종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민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 국가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함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천스님께서 이 땅에 개창하신 고려 천태종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쇠퇴의 역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조선 태종은 고려 때부터 11종(宗)으로 내려오던 모든 불교의 종파를 천태종, 율종,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진언종, 선종의 7종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는 다시 세종에 들어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라는 양종으로 축소되는데
이때부터 천태종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부산시내 각 구별로 신도회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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