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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

by 와송 2016. 4. 18.

 

 허목(許穆, 1595~1682)-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자 남인의 영수

허목은 1595(선조 28) 한양 동부 창선방에서 현감 허교(許喬, 1567~1632)의 삼 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陽川). 태어날 때 손바닥에 ()’자가 새겨져 있어서 자를 문보(文甫)라 하였고,

눈을 덮을 정도로 눈썹이 길어서 호를 미수(眉叟)라 하였다.

허목 학문의 연원에는 16세기 개성(開城)을 무대로 특색 있는 학문 성향을 선보인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이 있었다.

허목의 부친 허교(許喬)의 묘비문에는 공은 어려서 수암(守庵) 박지화 선생에게 수업하였는데,

수암 선생은 화담 서경덕 선생의 제자이다.”라고 기록하여 허교의 학문에 서경덕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서경덕의 학문은 성리학 이외에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절충하는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닌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성향은 허교에 이어 허목에게까지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허목의 학문 형성에는 경상우도라는 지역적 기반도 영향이 컸다.

 허목은 젊은 시절 부친의 임지를 따라 창녕의령 등 조식(曺植, 1501~1572)

정인홍(鄭仁弘, 1535~1625)의 학문적 영향력이 남아 있는 경상우도 지역에 머무르면서,

남명학파(南冥學派)의 학문을 수용하였다.

그는 1610(광해군 2)에서 1623(인조 1)까지 13년을 경상우도에서 살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1645년까지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허목의 학문적 기반에 북인(北人)의 모집단을 이루는 화담학파와 남명학파의 사상적 영향력이 있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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