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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여근곡(女根谷)의 전설-경주 건천읍

by 와송 2014. 12. 1.

여근곡(女根谷)의 전설

 

 

(여근곡의 앞부분이 개발되기 전의 모습)

 

일연이 쓴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신라 선덕여왕의 기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지 5년이 되던 어느 날.

한겨울인데도 궁 서쪽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 떼가 사나흘 울었다.

신하들이 괴이하다며 여왕께 물었다.

여왕은 "정예병사 2천 명을 모아 빨리 서녘 교외로 달려가 여근곡(女根谷)을 찾아가라.

그곳에 반드시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습격해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각간 알천과 필탄이 군사를 데리고 여근곡을 찾아갔다.

 

 

                                                                                          (여근곡의 앞부분이 개발된 후의 모습)

 

 

과연 여왕의 말대로 백제 군사 500명이 매복하고 있었다.

백제 군사들은 그 자리에서 몰살당했다. 여왕의 예지에 탄복한 신하들이 물었다.

여왕은 "개구리가 겨울철에 시끄럽게 우는 것은 병란의 조짐이요, 옥문(玉門)은 여성의 음부이니

그 빛이 희고 흰색은 서방의 빛이므로 적병이 서쪽에 있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여왕의 지혜와 신묘함을 알려주는 이 삼국유사 기사는 선덕여왕을 말할 때면 자주 등장하는 얘기다.

신라 선덕여왕이 기지로 백제 군사를 물리친 유명한 기사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경주 건천의 여근곡(女根谷) 이야기다.

이 사건은 여왕의 예지 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정치적 리더십을 강화한데 그치지 않고

도성을 방위하는 국책 사업으로 이어졌다.

대구로 이어지는 군사적 요충지에 663년 부산성(富山城·사적 제25)이 완공된 것이다.

 

부산성은 경주의 서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와 계곡을 걸치고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은 험준한 비탈 7.5를 빙 둘렀다.

성안은 25만여 평의 거대한 분지로 물이 많고 농사에도 적합했다.

 

그 부산성을 지키는 화랑 중에 '득오'가 있었다.

거대한 성채에는 사방으로 문이 나 있었고 창고와 훈련장도 있었다.

성의 창고지기에 임명된 '득오'가 자신을 찾아온 '죽지랑'과의 우정을 노래한 향가가

바로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부산일보 발췌

 

조선시대 때 과거 때문에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이 여근곡을 안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여근곡 일대에서 진격을 멈추는가 하면

미군들은 이 골짜기를 보며 환호했다고 한다.

 

드넓은 벌판에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솟은 산줄기 한가운데

길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마치 음문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까지 고려한다면 마치 '여성'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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