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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유적지-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와송 2009. 6. 23. 10:40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2년(41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장수왕을 설득해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데려왔다.

또 복호를 데려온 자리에서 눌지왕이 왜국에 있는 아우 미사흔을 그리워하자

박제상은 곧바로 다시 왜국으로 향했다.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왔다고 속인 박제상은

미사흔을 빼돌려 신라로 도망치게 하고 자신은 붙잡혔다.

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왜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박제상은 목도(木島)에서 불에 타 숨지고 만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화석이 되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넋은 새가 되어 날아가 그 옆의 국수봉 바위 굴로 숨어들었는데

그 곳이 바로 은을암이다.

은을암(隱乙岩)의 의미가 바로 새가 숨은 바위란 뜻.

또 그 새가 날아와 앉은 자리를 비조(飛鳥)라 부르니

지금의 두동면 만화리의 비조마을이 그 곳이다.


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致述神母)라 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박제상유적지가 그 사당터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치산서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 그 유래가 전하는 신라가요 치술령곡도 박제상의 부인을 기리는 노래다.


부인과 함께 첫딸 아기(阿奇), 3녀 아경(阿慶)도 울다가 죽었지만

2녀 아영(阿榮)은 어린 동생 문량(文良)을 위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문량이 바로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며

아영은 미사흔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한다.


-부산일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