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과 암자

자장암-통도사

와송 2009. 7. 7. 13:58

자장암 [慈藏庵]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암자.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안양동대(安養東臺)의 골짜기를 따라 2km 정도 가다보면

바위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이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나중에 회봉화상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법당, 요사채, 자장전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법당은 4칸 규모로서 사람이 겨우 거처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이며, 자장전에는 자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채 남쪽 바위벽에는 높이 약 4m 규모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 유일한 마애불로 189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법당 뒤쪽에 있는 바위벽에는 자장이 신통력으로 뚫었다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이 수도하고 있을 때 2 마리의 개구리가 곁에서 떠나지 않자,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는데,

그 뒤 1 쌍의 금개구리, 또는 벌과 나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었다

이 꽃은 고궁이나 절에서 많이 심는 것 같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마주나고 홀수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7∼9개로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바소꼴이고

길이가 3∼6cm이며 끝이 점차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는 톱니와 더불어 털이 있다.


꽃은 6월 말∼8월 말경에 피고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5∼15개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6∼8cm이고, 색은 귤색인데, 안쪽은 주황색이다.

꽃받침은 길이가 3cm이고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바소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화관은 깔때기와 비슷한 종 모양이다.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네모지며 2개로 갈라지고 10월에 익는다.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심어 왔으며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금와보살님을친견하러 가는 곳


금와보살을 보려고 줄을 서있는 사람들

오늘은 보살님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날이다

여기 와서도 금와보살님을 알현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단다







금와보살님이 계시는 곳

자장율사와 금개구리의 전설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법당 뒤 절벽 바위에는

1천4백 년 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도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어느 날 저녁 자장율사는 공양미를 씻으러

암벽 아래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으로 나갔다.

바가지로 막 샘물을 뜨려던 스님은 잠시 손을 멈췄다.


『웬 이럴 수가. 아니 그래 어디 가서 못 놀아서 하필이면 부처님 계신 절집 샘물을 흐려놓는고.』


스님은 샘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개구리 한 쌍을

두 손으로 건져 근처 숲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아침. 샘가로 나간 자장 스님은

개구리 두 마리가 다시 와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참, 그 녀석들 말을 안 듣는구먼.』


스님은 다시 오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아주 멀리 갖다 버리고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에도 개구리는 또 와서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스님이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불연이 있는 개구리로구나.』


자장율사는 개구리를 샘에서 살도록 그냥 놔 두었다.


어느덧 겨울이 왔다.

자장율사는 겨울잠을 자러 갈 줄 알았던 개구리가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도 늘 샘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 안되겠구나. 살 곳을 마련해 줘야지.』


스님은 절 뒤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을 손가락으로 찔러

큰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다.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


스님은 이렇듯 불가사의한 수기를 내리고는 개구리를 「금와」라고 이름했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불렀다.


금와석굴은 말이 석굴이지 지름이 1.5∼2cm에 깊이 10cm 정도의 바위 구멍이다.


그 속에는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는데

개구리 같기도 하고 큰 벌 같기도 한 것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한다.


고 경봉 스님이 10세 되던 해였다.

당시 80여 세이신 용익 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좋은 종이에 탁본하여 모실 수 있기를 발원했다.

용익 스님은 통도사 큰 법당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끝나기 3일 전, 금와보살이 큰법당 탁상 위에 나타났다.

용익 스님은 금개구리를 보는 순간 불사가 원만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3일간 철야정진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며칠 안되어 시주자가 나타나

팔만대장경 3권을 책으로 묶어 통도·해인·송광사에 1부씩 보관하게 됐다고 한다.


얼마 전 태응 스님은 자장암 법당 증축불사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가

개구리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

부처님 옆 탁자 위에 회색 바탕의 몸에 다리가 붉은 금개구리가 기어나와 있었다.


스님은 그 후 사철 동안 굴 속을 들여다보면서 금개구리를 자세히 살폈다.

초봄의 금개구리는 자연석 같은 회색 바탕에 등에는 검은 점이 있고

발끝에는 둥글둥글한 구슬이 달려 있었다.

금테 같은 선을 두른 입은 마치 두꺼비 입을 닮았다.

여름이 되니 몸이 파랗게 변하면서 검음 점이 많이 보이다가

장마가 지자 다시 초봄의 색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여름 더위가 심할 때는 몸 색이 누렇게 변하고 겨울이면 벌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기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금개구리는

먹이가 무엇이며 언제 밖으로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궁금히 여긴 자장암 스님들은 어느 날 밤낮없이 교대로 석굴을 지켜봤다.


영축산에 어둠이 깃드니 금개구리 두 마리는 밖으로 나와

석굴이 있는 절벽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4∼5m를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 본 사람이 없는데

스님들은 아마 새벽 2∼3시경인 듯 싶다고 추측하고 있다.


여름철 바위가 태양열에 파열되어 뜨겁기가 달구어진 무쇠솥 같아도

금개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뛰어다닌다고 한다.


옛날 어떤 관리가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자장암을 찾았다.


『이 절에 금개구리가 있다면서요?』


『예, 있습니다. 자장율사 이후 한 번도 산문 밖을 나간 일이 없이

자장암을 지키면서 석굴 속에 살고 있지요.』


스님이 금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 관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그 개구리를 잡아 시험을 해볼 것이오.』


『아니됩니다. 그 개구리는 불연이 깊은 불가사의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밀폐한 뒤 산문을 나와 함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잡아 넣은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함은 비어 있었다.


그 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은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통도사 자장암을 참배하는 불자들은 으레 금와보살을 친견하려 한다.

그러나 신심이 돈독한 사람에게만 보이므로

친견 못하고 돌아서는 불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금개구리 친견으로 자신의 신심을 한 번쯤 측량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